본문 바로가기

관심사/생각거리..

대한 전문가는 만 들지 않는다

그 이후 일반 중·고등학교에서도 선택과목으로 한글을 가르치게 되었다.

당 시 우수리스크시의 교육부와 협의하여 일반 학교에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지만 당시 중 고등학교에서의 호응과 교사로 나 가서 일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1998년도에 우수리스크 근처의 알세녜 브의 학교에서 1곳,우수리스크에서 1곳,

1998년 우수리스크의 2곳의 학교에서 새롭게 시범적으로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였다.

 

한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우려 고 하는 학생들이 3,40명씩 신청하였다.

교사도 사범대학 졸업생 2명씩 근무 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우수리스크의 학교는 1군데에 불과하다.


당시는 일반학교 교사들과의 연결도 잘 되고 서로 교재에 대해 보충도 많이 해 주면서

교육에 대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가고 경제적 위기가 옴에 따른

현실적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교사들에 대한 처우가 나아지 지 않음에 따른 이직을 어찌할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불안해하게 되는 것이다.


연해주에서나 러시아에서 대학에서는 한국학을 교육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유일하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교사를 양성하는 곳은 우수리스크 사범대학,

현 재는 극동 연방대학 사범대 우수리스크 캠퍼스인 한 곳 밖에 없다.

 

블라디보 스톡의 연방대학에서는 약 300명의 한국학 대학 학생들이 있지만

사범대학이 아니기에 한국에 대한 전문가는 양성하지만

한국어 교육에 대한 전문가는 만 들지 않는다.

 

그러나 우수리스크는 사범대학이지만 한국어 교육에 대한 전문 가가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우수리스크 사범대학 한국어학과 개설된 해인1992년도에 한국인 선교사로 시작한 한국어 교육은

1992년부터 양영근 목사가 3년간 봉사했고,

그 다음으로 박지형이 일본에서 기독교 문학을 전공하고 1993년도에 부임하여 2005년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94년도에 배재대학에 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김석주 선생이 2년간,

그리고 1995년도에 충남대학교에 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마친 김용관 교수가 2년간 근무를 했고,

1996년도에 배재대학 국문학과 석사를 마친 김익환 선생이 3년간 교육을 맡아 주었다.

 

그 후 매년 한국에서 젊은 교수 요원들이 왔었지만 오랜 기간 있지를 못하고 돌아갔다.

그들은 한국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거나 러시아어를 전공한 청년들인데,

러시아에서 경력을 쌓기 위함도 있고,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 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위기를 겪고,러시아에서의 교수에 대 한 처우가 낮은 이유로 인해,

오래 있지를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 다...  -17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