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인식 확대
3자회담 이후 차후회담의 형식에 대해서 북한은 “양자회담 후 다자회담”을 주장 하였고,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다자회담을 주장하였다.회담의 형식에 대한 이견으로 후속회담 개최가 불투명해지자 북한은 다자회담 거부 태도를 바꾸어 미국의 대북정책이 변화가 있다면 대화형식에는 구애를 받지 않겠다고 하였으며, 그 뒤 미국,중국,한국,일본,러시아가 참가하는 6자회담의 개최에 동의하였다.북한이 6자회담 개최를 동의한 이유는
첫째로,미국이 보수파의 의견을 채택하며 대북 강경책과 함께 압박을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미국과 한국,일본이 공조를 강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역시 관련국들과의 협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 었다.
셋째,북한은 미국과 단시일 내에 합의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미국이 지연 전략을 쓰면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여 더이상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넷째,중국과 러시아,특히 중국의 적극적인 주선이 촉진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6자회담의 과정과 주요 쟁점
2003년 8월 27~29일 중국의 베이징에서 1차 6자회담이 열렸으며,여기서는 기 본적으로 북핵문제에 관하여 참가국들의 공동발표문 초안작성에 대한 합의에 이르 지 못하고 의장이 구두로 협약내용을 요약 발표하는 것에 머물렀다.이 회의에서는 첫째,대화를 통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둘째,한반도 비핵화유지 및 대북 안정보 장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셋째,단계적,동시 또는 병행실시 방식 추진,넷째, 회담 진행중 사태악화를 초래하는 행동자제,다섯째,대화유지,신뢰증진 이견축소, 공동인식 확대,여섯째,6자회담의 과정지속,외교패널을 통한 차기회담의 시간 및 장소 조속결정 등의 내용이 발표되었다.
그러나 1차 6자회담에서는 미국이나 북 한 모두 서로에게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미국은 북한의 우선적으로 핵과 관련된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보상을 해줄 수 입장을 고수하였고,북한은 핵과 관련한 어 떠한 것을 포기한다는 동의만으로도 미국이 식량이나 중유를 지원 해주어야 하며, 실제적으로 핵과 관련된 시설이나 물질을 동결하고 사찰단을 받아들일 경우 북`미` 양자간 불가침조약에 동의하고 전력을 보상해주어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고수하였다.